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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로마서 8장을 통해 성령님의 사역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신자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살펴보면서 큰 복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보여주신 반응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과거에 성령님을 모욕하고 모독하며 성령님의 사역과 위격을 잘못 표현하는 교회에 다니셨던 많은 분들이 보여주신 반응에 감사드립니다.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고 합당한 방식으로 성령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 분들에게서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을 들으니 정말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수년간 제 책장에 꽂혀 있던 성령님의 위격과 교리에 관한 책들을 꺼내 읽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제 마음과 생각을 풍성하게 하고, 성령님에 대한 건전하고 성경적인 신학을 제 마음속에 다시 정립하기 위해서 여러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새 힘을 얻는 느낌이었고, 성령님께 합당한 영광과 예배를 드리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일과 중에 시간을 정해서 성령님이 제 삶에서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처럼 진리로 격려를 받는 반면에, 오늘날 현대 기독교 교회에서 성령님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알아갈수록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 저는 은사주의 운동뿐만 아니라 그 범위를 조금 더 넓혀서 현재 성령님의 역사로 돌려지는 일들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신자들의 삶에서 성령님의 역사로 돌려지는 일들의 목록을 작성해 봤습니다. 여기에는 사람들을 바닥에 쓰러뜨리는 것, 통제할 수 없이 킥킥거리고 웃게 하는 것, 전기 충격을 받는 것 같거나 체온이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것, 최면 상태에 빠뜨리고 때로는 몇 시간 동안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것, 그리고 성령의 경련과 성령의 딸꾹질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이 임하시면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며 물건에 걸려 넘어지고 심지어 반 실신 상태로 쓰러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 덜덜 떨리게 하고 일시적인 마비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답니다. 성령님이 무의미한 말, 횡설수설하는 말을 하게 한답니다. 심지어 닭이나 오리, 개와 같은 동물 소리를 내게 한답니다. 옷을 찢게 할 수도 있답니다. 공중으로 한 3미터 정도 들어올려서 방 안을 가로질러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신발이 반대 방향으로 날아갈 수도 있답니다. 성령님이 치유자에게 힘을 주셔서 치유를 위해 아픈 사람의 배 한가운데를 온 힘을 다해 주먹으로 치게 하거나, 아니면 턱을 치게 하거나 심지어 얼굴을 치게 할 수도 있는데, 어디를 치유받느냐에 따라 다르답니다. 그리고 성령의 뺨 때리기도 있답니다. 조금 덜 고통스럽긴 하겠네요. 성령의 점프와 성령의 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 모든 일을 하는 성령이 여러분의 것이 되려면 전도자에게 돈을 보내면 된답니다. 여기서 저는 사도행전 8장이 떠올랐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와서 사도들에게 돈을 제안합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이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그 어떤 것도 살 수 없습니다. 하물며 성령의 능력은 더욱 그렇습니다. 비록 그렇게 장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만 말입니다.

이런 종류의 너무 많은 일들이 성령님의 역사로 돌려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님을 모욕하고 슬프게 하며 모독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성령님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예배와는 정반대입니다.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참된 예배와 대척점에 있는 일들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성령님을 친절한 유령 캐스퍼보다 한 단계 정도 위에 있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성령님을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모든 면에서 영원한 하나님, 삼위일체의 제3위격으로서 사랑을 받으시고 존경을 받으시며 예배받아야 할 분으로 여겨야 합니다. 성령님은 무시당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하나님이시며, 예배를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신자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관여하는 분이 성령님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배운 바와 같이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하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그 후에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능력을 주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영적 세례를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하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우리를 조명하셔서 저자 직강으로 성경을 가르치시는 분도 성령님입니다. 언젠가 우리를 영화롭게 하고, 우리의 몸을 영원한 생명으로 일으켜 세우실 분도 성령님입니다. 이 모든 사역이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신자로서의 삶 전반에 걸쳐 성령님은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인 거룩함의 기준에 맞게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꾸준하게 우리를 한 단계의 영광에서 다음 단계로 옮기시며, 우리가 하늘에서 완전해지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바보같은 사역이 아닙니다. 거룩함의 사역입니다.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큰 그림을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1장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이루고자 하십니까?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4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축도인데,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신약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본질적으로 동등하시고 동일하시다는 의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이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현재에도 미래에도 완전하고 온전한 의미로 주셨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이렇게 하시는 걸까요? 4절에 나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 말씀은 영원한 과거에서 영원한 미래까지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말씀입니다.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시작되어 시간이 끝난 후에도 계속됩니다. 택하심과 영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그 목적은 우리가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하늘에서 이루어집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의롭고 더 나아가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모든 복을 주십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더라도 살아있을 수 있는 겁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의 가려진 일부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를 보았을 때 반쯤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사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에게 저주를 내렸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집니다. 영광의 그리스도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나타났을 때, 바울은 눈이 멀어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요한에게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불완전한 인간이 바라볼 수조차 없는 영광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구속받은 자들이 그만큼 완전하게 되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 앞에 실제로 설 수 있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 사이, 즉 택하심과 영화 사이에, 하나님의 영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치십니다. 다시 말해, 점진적으로 더 거룩하게, 점진적으로 더 의롭게, 점진적으로 더 그리스도를 닮게 만들고 계십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그리스도는 완벽한 인간의 표상입니다. 예수님이 모델, 본보기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목표는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흠 없음입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의로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속 계획입니다. 영원히 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할 그런 백성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에 의해 보여졌으며,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고, 성령에 의해 모두 적용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를 영광으로 이끄시는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고린도후서 3장 8절에서 보았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때 성령님은 우리를 한 단계의 영광에서 다음 단계로, 또 그 다음 단계로 이끄십니다. 그리스도가 모델이시며 형상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성령님은 오셔서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이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로마서 8장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넘겨보셔도 됩니다, 예정되고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30절에서와 같이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영화롭게 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29절입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닮은, 가족끼리 서로 닮은 구원받은 인류를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 배웠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하셔서 우리에게 상속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가 단지 입양된 아들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입양된 아들로서 우리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새로 태어난 아들로서 우리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님은 우리를 다시 빚으셔서 가족의 모습을 갖게 하시고, 우리의 형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만들고 계십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성령님은 바보같은 일들이 아니라 거룩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일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로마서 8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성령님의 사역을 보았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자유롭게 하십니다, 2절과 3절에 나오죠. 성령님은 우리가 율법을 성취할 수 있게 하십니다, 4절에 나오죠. 성령님은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키십니다, 5절에서 11절까지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12절과 13절에 나오죠. 그리고 지난 시간에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의 아들로 입양하신다는 것을 14절에서 16절까지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이 모든 사역을 행하시는 성령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요소에 도달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원한 영광을 보장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원한 영광을 보장하십니다. 제가 앞서 읽어드린 17절부터 30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31절부터 39절까지는, 제가 판단하기에 성경의 그 어떤 구절보다 구원의 영광을 가장 극적이고 위대하게 요약한 축도문입니다. 이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에 대한 반응입니다. 31절부터 시작해서 살펴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17절부터 30절까지를 앞으로 몇 주간 보면서 성령님이 어떻게 우리의 영원한 영광을 보장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앞서 읽은 본문을 보면, 23절입니다, 성령님이 첫 열매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농부는 첫 열매를 보는 순간 작황이 어떨지 알 수 있습니다. 처음 열매는 나머지 열매가 어떨지를 보여주는 징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성령님과 성령님이 가져오시는 모든 영광과 모든 축복은 단지 첫 열매일 뿐이며, 단지 서약일 뿐이며, 단지 맛보기일 뿐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머지 것들에 대한 보증일 뿐입니다.

성령님은 또한 보증, 아라본(arrabōn)이라고 불립니다. 이 단어는 약혼 반지, 계약금, 담보를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결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증명하는 약혼 반지와 같습니다. 성령님은 계약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에 이르렀을 때 나머지를 지불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보증이십니다. 성령님은 또한 인(seal)이라고 불리십니다. 하나님의 진정성과 권위, 소유권을 의미하는 도장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고, 성령의 보증을 받았으며, 성령의 첫 열매를 받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1절부터 22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이처럼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서 ‘인’과 ‘보증’이 같은 구절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인치시고, 우리의 다가올 영원한 영광에 대한 계약금, 보증이 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이제,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요약하자면, 우리 삶에서 죄의 지배로부터의 자유,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성령님의 일에 마음을 두고자 하는 열망, 육신을 이길 수 있는 힘, 하나님의 자녀됨의 기쁨과 확신, 이 모든 것들은 거듭나게 하시고 성화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이며, 앞으로 있을 영화의 사역에 대한 보증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이 일은 단지 시작되었을 뿐이며 앞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 8장을 이렇게 시작한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는 정죄함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미래의 그 어떤 정죄로부터도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면서 이생에서 우리를 끝까지 지키시고, 그 후에 우리의 영을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인도하시며, 언젠가는 우리의 몸을 일으켜 그 영과 결합시키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원히 천국에서 하나님 임재의 완전한 찬란한 영광 가운데 서서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을 향한 길 위에 있으며, 성령님은 이 과정에서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제가 전에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만일 구원을 잃을 수 있는 방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는 잃고 말거라고 말이죠. 만일 스스로를 구원에서 실격시킬 수 있다면 저는 실격될 겁니다. 저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스스로 구원 받은 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구원할 만큼 의롭지 못하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스스로 구원 받은 상태를 유지할 만큼 의롭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저를 구원하시고, 은혜로 저를 지키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 거듭남의 능력으로 저를 구원하셔야 할 것이고, 끝까지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보호하는 능력으로 저를 지키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영광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완벽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리라는 뜻입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빌립보서 3장 20절부터 21절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우리는 창세 전,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도록 택하심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아무도 잃어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며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로마서 8장 11절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님이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인도되어 하나님 앞에 서서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의 중심에 있는 보좌로부터 발산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을 보고 영원히 함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올 때는 영광이 없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전혀 이르지 못합니다.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영광이 없습니다. 우리가 원래 창조될 때 지녔던 하나님의 형상은 매우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있습니다. 끔찍하게 손상되고 훼손되었죠.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영광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영광스럽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받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다른 우상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다른 거짓 신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백성에게는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영광의 소망 가운데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이 영광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 영광스럽지는 않지만, 그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그 영광이 우리 안에 들어왔고, 성령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시지만, 그 영광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서 읽어드린 로마서 8장이 말하듯이, 온 세상은, 피조물은 아직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광스럽게 나타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가려져 있고, 덮여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을 볼 때 그 어떤 영광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완전히 영화롭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목표입니다. 제가 30절을 통해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성화의 과정을 거쳐 영광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우리의 다가올 영광에 대한 인치심, 보증, 약혼 반지, 계약금, 첫 열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의 것이 될 영광을 우리 아버지로부터 상속받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되었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로 아들이 되며, 영광을 받기 위해 아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소유하신 모든 것을 받을 완전한 권리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정말이지 장엄한 현실입니다.

이제 17절과 18절을 보겠습니다. 오늘은 이 두 구절만 보겠습니다. 나머지는 크리스마스 이후에 다루겠습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습니다. 여기에서는 상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7절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처럼 18절은 비교할 수 없는 영광, 어떤 비교도 할 수 없는 영광에 대해 말하며 끝납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가질 그 영광을 상속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속받는 것은 영광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상속받는 것입니다.

이제 이 짧은 본문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의 상속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상속에 대한 사실입니다. 이는 여러분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17절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니”, 여기서 ‘자녀이면’이란 말에 ‘~이기 때문에’라는 의미의 부사가 들어 있습니다. 헬라어 문장 구조를 말하는 겁니다. 이 부사가 있으면 '충족된 조건'이 됩니다. 충족된 조건은 ‘만약’이라는 조건이 아니라 ‘~이기 때문에’라는 조건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이것이 충족된 조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습니까? 14절, 15절, 16절을 통해 살펴보았죠. 우리는 자녀입니다. 16절 끝에 나오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4절 끝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입양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바 아버지”라고 외칠 모든 권리가 있으며, 우리가 자녀이므로, 이것이 현실이며 충족된 조건이므로, 우리는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상속자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여러분은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상속자가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절이 말하듯이 말이죠.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자녀라면, 여러분은 상속자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상속자입니다.

이제 다시 로마의 입양법을 떠올려 봅시다. 입양된 자녀는 친자로 태어난 자녀들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입양된 자녀들은 부모가 친자보다 더 우수한 자녀를 원했기 때문에 입양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녀를 입양하기로 선택했다면 그것은 가족의 미래 이익과 복지를 위해 의도되었기 때문이며, 그 자녀는 그 가족의 친자들과 동등한 모든 상속권을 가졌습니다. 사실, 입양된 자녀는 다른 자녀들과 동등했고 많은 경우에 더 우수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장자가 두 배의 몫을 상속받았습니다. 만약 두 아들이 있다면, 장자가 3분의 2를 받고 막내가 3분의 1을 받았습니다. 장자는 유산에서 두 배의 몫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로마법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로마 역사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현재 찾을 수 있는 로마법에 따르면, 모든 아들은 동등한 몫을 상속받았습니다. 로마 체계에서는 상속이 평등했고, 이는 입양된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이 로마의 법이었습니다. 물론 로마인들이 항상 이를 따랐는지에 대한 여부는 논란이 있긴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로마의 관습으로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로마법 아래에서, 로마법의 비유로, 하나님의 아들인 모든 이들은 평등한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모두 평등한 상속자입니다. 아들이라면, 또는 자녀이므로, 아들이기에 또한 상속자입니다. 그리고 로마법에 따르면, 상속으로 받은 것은 구매한 소유물보다 더 안전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상속으로 무언가를 받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자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평등하게 상속을 받았고, 우리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안전합니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 얻은 것은 그게 무엇이든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게 됩니다. 그렇죠? 아들이기에 또한 상속자입니다.

이를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입니다. 4절부터 읽겠습니다. 이미 예배 중에 들으신 말씀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이 속량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것이 구원의 목적입니다. 우리를 가족으로 데려오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아들로 입양하여 모든 권리를 주고, 그 다음 우리를 아들로 거듭나게 하여 본성을 주며, 그리고 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델로 하는 가족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아들로 입양된 결과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잘 들으십시오,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이것이 우리가 받을 상속에 관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을 상속에 관한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베드로전서 1장의 장엄한 말씀에서 더욱 잘 표현됩니다. 놓치시면 안 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입니다.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님의 본질은 같으며, 본성에서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강조되고 있는 겁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이 모든 것이 긍휼이며, 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우리는 갈라디아서에서 입양되었고, 여기에서는 거듭났습니다. 이는 우리의 권리와 본성 모두를 말합니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우리는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산 소망 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산 소망은 무엇입니까? 여기 나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얻게 하시나니,” 상속을 받은 것입니다. 이 상속에 대해 뭐라고 합니까?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썩지 않고,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더럽지 않습니다. 부족하지도 않고, 흠도 없고, 손상되지도 않으며, 쇠하거나 사라지거나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구원받은 이유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거듭난 이유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가족으로 입양된 이유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상속을 얻기 위함이며, 이는 하늘에 여러분을 위하여 간직된 것입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음 구절인 5절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이는 증거하기 위한 능력이지만 또한 보호받기 위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데, 이는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성령님은 어떻게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지키십니까? 성령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실패하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포기하지 않도록,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배반하지 않도록 지키십니까? 바로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님이 여러분의 믿음에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안 믿어요.” 아니요. 더 이상 믿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고, 성령님에 의해 능력을 받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구원의 전체 목적은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흠 없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상속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을 상속에 관한 사실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쇠하지 않고, 하늘에 간직되어 있으며, 성령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끝까지 유지시켜 주시는 내적 보호자이십니다.

이 상속은 누구에게서 오는 것입니까? 이것이 상속에 관한 사실입니다. 17절에 따르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결정한 것을 상속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속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간직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를 위하여 간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상속받을 보물을 하늘에 간직하고 계신 겁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 상속을 받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골로새서 3장 24절을 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는 많은 구절 중에서 제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구절입니다. 골로새서 3장 24절입니다.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우리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겁니다. 주께로부터 올 겁니다. 주님이 주실 것이며,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내용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물으실지도 모릅니다. “뭘 상속받는다는 건가요? 주님이 우리를 위해 간직하신 것이 무엇인가요?” 순수하고 참되며 포괄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완전함, 거룩함, 흠 없음, 절대적인 의로움, 완전함입니다. 영화롭게 된 인류의 완전함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입니다. 이를 알 수 있는 더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이 자신의 분깃이시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도 주님이 자신의 분깃이시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은 우리가 최종적인 영광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상속은, 여러분,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바로 이것이 유산이요 유업이요 기업입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보좌에서 빛나는 그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무한한 끝까지 확장되며, 우리는 그 영광의 완전한 불꽃 속으로 들어가지만, 거룩하고 흠 없기 때문에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며 하나님이 가진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놀라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상속받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받게 됩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세 번째 문제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상속의 범위입니다. 이 상속은 얼마나 광범위한 것일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입니다. 이는 다시 한 번 평등한 상속이라는 로마 관습을 강조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될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시편 2편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그리고 그 이상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만유이시며 만유 안에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입니다.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 모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통치자라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그분께 복종하고,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며, 절대적으로 모든 것이 그분의 것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그분의 것이 되는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2절은 그리스도를 “만유의 상속자”라고 부릅니다. 만유, 모든 것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만유의 상속자가 됩니다. 정말이지 놀라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죠.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 나오죠.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 즉 하늘의 형상을 지닐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9절에 나오죠. 이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신성을 갖게 되지는 않겠지만, 영화롭게 된 인류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만이 있으실지도 몰라요. 예수님은 상속을 받기 위해 십자가에서 많은 일을 하셨는데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우리도 받게 되나요? 우리와 같은 가치 없는 사람들도 상속받는 것이 예수님께 실망스러운 일이 되지는 않을까요?” 글쎄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기를 꺼리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 22절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우리와 영광을 온전히 나누십니다.

이 상속의 위대함은 정말 놀랍습니다. 행위가 아닌 은혜로 주어집니다.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집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으시고 변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언약입니다. 이 상속은 많은 상속자들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한한 영광을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상속은 영광스럽고 포괄적이며 안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상속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얻는 것이며, 오래된 표현을 빌리자면, 성령님에 의해 우리에게 보장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이 구절에서 고려해야 할 네 번째 사항이 있습니다. 바로 상속을 위한 준비입니다. 상속을 위한 준비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영생을 받고, 모두 같은 영광을 받으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와 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섬기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동일한 임재 안에 있을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동일한 상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생에서의 봉사와 관련된 책임의 정도와 봉사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주님은 여러 비유를 통해 이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하지만 개개인의 영원한 상속의 본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세상에서 우리가 측정하는 성공이 아니라 고난이라는 원칙입니다. 17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는 상반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하반절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2세기까지 성경 학자들은 ‘만일’라는 단어를 ‘때문에’로 번역했습니다.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죠. 우리는 자녀이기 때문에 상속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확실히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자가 고난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는 겁니다. 반드시 순교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우리가 고난을 받는 것이 사실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미워하는 세상에서 어느 정도의 고난을 받는다는 겁니다.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의 수치를 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고난은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병에 걸렸거나 결함이 있거나 결혼 생활에 어려움이 있거나 직장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고난 범주에 속하며, 주님은 이에 대해 걱정하시고 동정심과 연민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영원한 영광과 영원한 보상에 비례하는 것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받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지금 박해를 받고 있지는 않는다는 걸 압니다. 우리는 어딘가에 매달아지거나, 기름에 끓여지거나, 대나무를 손가락 밑에 찔러 넣는 고통을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 정도로 박해를 받지는 않지만, 적대적인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는 데 충실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고난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으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우리는 바울의 말처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게 될 겁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영광에 이르는 길은 고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는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바울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4장입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치욕을 지게 될 때, 우리는 영광에 이르는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이 건강하고 부유하며 행복하고 성공하고 인기를 얻고 편안하기를 원한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혀 거리가 멉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의 영원한 영광에 관심이 있으시며, 그 영원한 영광으로 가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치욕을 지는 것임을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모두 하나님을 받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가 소유한 모든 것의 공동 상속자가 될 것이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고난의 정도에 따라 하늘의 영광 가운데 섬길 방식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현실을 도피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이 단지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이 영화롭게 되는 것을 원하시며, 영광으로 가는 길이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고 성찬식을 하겠습니다. 바울은 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을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그리스도의 치욕을 짊어지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으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주님의 임재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복되신 성령님의 사역은 우리가 그 영광을 받기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 따르면 약속의 성령님은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이 한 말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성령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령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방식으로 예배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이 성찬식에 임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죄든지 고백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붙잡고 있는 어떤 것이라도 회개하고 그것에서 돌이켜 십자가의 발 앞에서 예배하며,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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